[선조사적(先祖史跡) 25] 능성구씨 시조 존유공의 상세에 대하여

 

대종회 상임부회장 자선(滋璿)

능성구씨 시조(始祖) 존유(存裕)공의 상세(上世)에 대하여

 

능성구씨세보(綾城具氏世譜) 중 제1보인 을해보(乙亥譜, 1575)를 비롯한 역대 족보에 시조(始祖)공의 생졸연대에 관한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시조공께서 고려(高麗)조 때 문과에 장원급제하시고 벼슬이 벽상삼한(壁上三韓) 삼중대광(三重大匡)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에 오르셨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조 광종(光宗) 이후 분으로만 추정할 수 있을 뿐 다른 전고(典考)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일부 종인들이 시조공께서 공의 장인되시는 청계〔淸溪, 휘(諱)는 주잠(朱潛)임〕공을 따라 중국에서 오신 것으로 추정하여 정확하지 않은 인쇄물을 배포하는 사례가 있어 보학(譜學)을 배우는 후학들에게 확실하지 않은 정보가 전달되는 것이 심히 우려되어 대종회에서 논의된 방침을 밝혀 두고자 합니다.

시조공께서 중국에서 오신 것으로 추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①청계(淸溪)공께서 1194년에 출생하시고 1224년에 우리나라에 오실 때 7학사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오셨다 하니 그 때 청계공의 춘추(나이)가 30세이신 것을 추상해보면 우리 시조〔始祖, 휘(諱)는 존유(存裕)임〕공께서 10여 세의 어린 나이로 부모 품에 계실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성(姓)도 다른 청계공을 따라 피난길에 오르시는 위험한 행보에 동행하셨을 것으로 믿기 어려우며,

②고려사(高麗史)에 보면 궁예(弓裔)가 후고구려(뒤에 태봉이라 국호 변경)를 건국하여 활동하던 때인 901∼918년경에 구진(具鎭) 장군으로 하여금 나주(羅州)를 수호케 하였고,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고려(高麗)를 세울 때에도 다시 구진(具鎭) 장군에게 나주(羅州)를 수호케 한 기록이 있는데 그 때는 능주(綾州)가 나주(羅州)에 속해 있었으며, 고려 태조(918) 때에 구족달(具足達)이란 사람은 서도가(書道家)로 벼슬은 흥문감경(興文監卿)이었고 당시 충주(忠州) 정토사(淨土寺)에 법경대사(法鏡大師) 자등탑비(慈燈塔碑)와 강릉(江陵) 지장원(地藏院) 낭원대사(郎圓大師) 오진탑비(悟眞塔碑)의 필적을 남겼는데 우리 시조공보다 300여 년 전 인물로 시조공께서 그 두 분들의 후손일 가능성도 있으나 지금까지 구체적인 전고가 없어 확실하게 추상하지 못하고 있는 바 우리 종인들은 시조공 이하의 제선조님에 대한 문헌 및 보학연구에만 더욱 힘써 주시길 바라며 더 이상 시조공께서 중국에서 오셨다는 추상은 없으시기 바랍니다.

 

능성구씨(綾城具氏) 연원(淵源)   

능성구씨(綾城具氏)의 시조(始祖)인 구존유(具存裕) 이전의 구씨(具氏)를 찾아보면 고려(高麗) 태조(太祖) 원년(918년)에 궁예(弓裔)의 태봉국(泰封國) 시중(侍中)이었던 구진(具鎭)이 나주도대행대시중(羅州道大行臺侍中)에 임명되었고, 후백제(後百濟)의 장군 구도(具道)와 그의 아들 구단서(具端舒)가 있었으며, 고려 숙종(肅宗) 6년(1101년)에 탐라(耽羅=지금의 제주) 성주(星主) 배융부위(陪戎副尉)인 구대(具代)가 유격장군(遊擊將軍)에 임명되었던 사실을 고려사(高麗史)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전고(典考)가 없어 능성구씨(綾城具氏)의 시조(始祖)인 구존유(具存裕)공과 이들과의 관계를 알 수는 없지만 구씨(具氏)가 당시 나주(羅州)나 능성(綾城) 지역의 토착 성씨(姓氏)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에도 구씨(具氏)를 능성현(綾城縣)의 대표적인 성씨(姓氏)로 기록하고 있다.

능성구씨(綾城具氏)는 구존유(具存裕)공을 시조(始祖)로 하며 고려 말 조선 초에 활동하였던 7세(世)의 인물들을 파조(派祖)로 하여 판사파(判事派)·전서파(典書派-无后)·시랑파(侍郞派)·좌정승파(左政丞派)·판안동파(判安東派)·도원수파(都元帥派)·재신파(宰臣派-在北)·낭장파(郎將派)·감무파(監務派)·임천군사파(林川郡事派-无后)·참판파(參判派)·문천군사파(文川郡事派) 등 12개 파(派)로 분파(分派)하였다. 이 중에서 이북지방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는 하나 남북 분단으로 인하여 전고(典考)를 알 수 없는 재신파(宰臣派)와 후손이 없어 무후(无后)된 전서파(典書派)와 임천군사파(林川郡事派) 등 3개 파(派)를 제외한 9개 파(派)의 후손들이 실존하여 번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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