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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대종회
2007/9/27(목)
7월의 독립운동가-구춘선 선생  

7월의 독립운동가로 구춘선(具春先) 선생 선정

국가보훈처는 광복회ㆍ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북간도에서 간민회와 대한국민회 등을 조직하여 만주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권익보호와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하신 구춘선(具春先) 선생(1857-1944.3.20)을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적을 기리는 전시회를 7월 한 달 동안 천안 독립기념관 제2전시관에서 개최하여 사진과 자료 20여 점을 전시하였다.

 

구춘선 선생은 호가 북은(北隱)으로 1857년 함경북도 온성(穩城)에서 태어났다. 하급군졸을 시작으로 뛰어난 학식과 인품, 괴력으로 행영(行營)의 도시(都試)에 선발되어 관직에 나아가 서울의 궁궐 수비의 군인이 되어 남대문 수문장 등 중앙에서 군관으로 봉직하다가 청일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와 북간도로 이주하였다.

 

선생이 이주할 당시 북간도에는 많은 한인들이 이주하여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며 정착하고 있었다. 재만한인의 열악한 생활상을 목격한 선생은 온성의 두만강 건너편에 한인보호소와 병영을 설치하여 만주로 이주한 한인들을 보호하였다. 용정으로 이주한 후 캐나다인 선교사 그레이슨을 만나 기독교를 믿기 시작한 선생은 종교활동과 교육활동에 힘을 쏟았다. 용정중앙교회를 설립하여 기독교를 전파하는 한편, 1909년 김약연(金躍淵), 이동춘(李同春), 정재면(鄭載冕) 등 당시 북간도의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간민교육회(墾民敎育會)를 조직하고 민족교육을 실시하여 한인들의 항일애국정신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1913년에 간민교육회를 계승하여 재만한인의 자치를 목적으로 간민회(墾民會)를 조직하고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선생은 중국과 일본의 세력이 크게 미치지 못하는 왕청현(汪淸縣) 하마탕에 한인마을을 개척하고, 하마탕교회와 학교를 설립하는 등 종교와 교육을 중심으로 재만한인의 생활안정을 돕고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선생은 북간도의 기독교 세력을 중심으로 민족지도자들과 힘을 합쳐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1919년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던 북간도의 민족지도자들은 국내에서 3·1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한인들과 함께 3월 13일 정오 룽징(龍井)에서 3·13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보다 체계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조선독립기성총회(朝鮮獨立期成總會)를 조직하고 다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한국민회 회장으로 선출된 선생은 상하이에서 조직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계하며 한인들의 생활안정과 자치를 모색하는 등 대한인국민회를 북간도지역 최대규모의 독립운동단체로 이끌어나갔다.

 

또한 보다 적극적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고자 국민회군을 조직하여 독립군을 양성하고 국내와의 연계투쟁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북간도지방에 조직된 많은 무장독립운동단체와 힘을 합쳐 공동무장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사령관 안무(安武)가 이끄는 국민회군은 홍범도(洪範圖)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최진동(崔振東)의 군무도독부와 연합하여 1920년 6월 봉오동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선생은 계속해서 대한국민회를 이끌며 독립운동단체와의 연합을 주도하여 항일무장역량을 결집하고자 하였다. 이에 항일무장투쟁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로 평가되는 청산리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둘수 있었다.

 

청산리전투에서 참패한 일제는 한인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우는 등 야만적인 간도참변(間島慘變)을 자행하였다.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러시아로 이동한 선생은 그후 다시 만주로 돌아와 왕청현 백초구(百草溝) 지역을 중심으로 신앙운동과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선생은 평생을 북간도를 중심으로 한인의 권익보호와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하다 1944년 순국하였다. 이에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6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편집자 주 : 이상의 내용은 국가보훈처의 자료를 간추린 것으로 일부자료에는 具春善으로도 기록이 되어있으며 선생의 아들이 2명인데 장남은 具慈鼎(具大有), 차남은 具慈昇으로 기록이 되어있으나 아쉽게도 족보에는 기록이 없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직서(直書) 전 대종회장(제18대 역임)께서 생전에(6ㆍ25사변 전) 함경도에 가신 일이 있었는데 그 당시 함경도 지역에 능성구씨 일가들이 부락을 이루어 50여 호의 가옥에서 거주하고 있었으며 그들 모두가 도원수파의 충렬공 후손이었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구춘선 선생도 충렬공 후손이 아닌가 하고 추측만 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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