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대종회
2022/8/4(목)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관람하세요  

 

 

구수영(具壽永) 명(銘) 패찰(牌札)

 

 

서울 시내 종로1가 종로타워빌딩(옛 화신백화점) 옆 센트로폴리스빌딩 지하 1층에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 있다.

이곳은 2015년 공평동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선 한양에서 근대 경성에 이르는 역사도시 서울의 골목길과 건물터가 온전하게 발굴되어 서울시에서 도시유적을 원래 위치에 전면적으로 보전하여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조성하였다.

 

공평동 유적은 조선시대 한양의 행정구역에서 중부(中部) 견평방(堅平坊)에 속하며 견평방은 조선시대 최고의 번화가이자 시전의 중심지로 한양의 중심에 자리하면서 시전, 궁가, 관청 등 다양한 시설과 계층이 혼재하였던 지역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곳에는 조선시대의 전동 큰 집, 골목길 ㅁ자 집, 전동 골목길, 시전의 뒷골목 등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도원수파 호양공의 둘째 아드님인 능천군(綾川君 : 구수영(具壽永)이 살았던 능성구씨 가옥(지금의 종로구 인사동)에 대한 이야기와 가옥의 변천사, 이문안길과 석축 등에 대해서 영상과 글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능천군은 1456년에 출생했으며 용모가 단정하고 성품이 온화하고 공손하였고 행동이 비범하였다. 선략장군(宣略將軍), 절충장군(折衝將軍) 행 의흥위부호군(行 義興衛副護軍), 좌리원종공신(佐理原從功臣),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도총관(都摠管), 숭정대부(崇政大夫)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한성부윤(漢城府尹), 팔도관찰사(八道觀察使), 개성유수(開城留守)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능성구씨 가옥과 이문)공평동 유적의 이문안길 끝에는 능천군〈綾川君 : 구수영(具壽永) 1456∼1524〉의 집이 자리하고 있다.

 

구수영은 세종의 여덟째 아들인 영응대군(永膺大君)의 사위로 중종반정에 가담해 정국공신에 올랐다. 영응대군의 형인 세조가 구수영을 영응대군의 사윗감으로 정해주고 살곳을 마련해 주었는데 그곳이 바로 종로시전 뒷길에 위치한 능성구씨 가옥이다. 가옥에서 종로방향으로 연결된 길의 중간지점에 지금의 공평동 유적이 있고 그 길을 따라 종로와 만나는 지점에 이문(里門)이 있다.

 

일반적으로 이문은 야간 통행자를 검문하기 위해 마을입구에 세우는 것이지만 능성구씨 가옥은 인조가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기 때문에 가옥으로 들어가는 동네 입구에 이문을 세워 순라꾼도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엄격히 통제하였다.(능성구씨 가옥의 변천)능성구씨 가옥은 구수영의 종손인 구사안이 동생 구사맹에게 대지의 서쪽 일부를 떼어주고 집을 지어 살게 하면서 잠룡지가(潛龍之家)와 태화정가(太華亭家)로 나뉘었다.

 

인조는 왕이 되기 전 외할아버지인 구사맹의 집에서 자랐다. 태화정은 구사안의 손자 구인후가 만들었다. 능성구씨 가옥은 조선후기에 현종의 후궁인 경빈김씨의 순화궁이 되었다가 일제감점기에는 이완용의 소유로 넘어갔다. 이후 요릿집 명월관의 주인 안순한이 인수해 명월관의 별관으로 사용했는데 이때 태화정이 있던 자리라 하여 이름을 태화관(太華館, 이후에는 泰和館)으로 고쳤다.

 

1919년 3월 1일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이 이곳 태화관 2층 끝방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1921년에는 사회복지기관인 태화여자관이 설립되었고 1982년 도시재개발계획으로 태화여자관이 철거된 후에 현재의 태화빌딩과 하나로빌딩이 들어섰다.

 

(이곳 전시관의 관람료는 무료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고 찾아가는 길은 다음과 같다 :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1번 출구에서 130미터 직진 후 인사동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30미터 직진하면 우측에 센트로폴리스빌딩 지하 1층 전시관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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