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대종회
2006/3/25(토)
구자신(具滋信) 쿠쿠홈시스㈜ 대표이사 회장  

- 구자신(具滋信) 쿠쿠홈시스㈜ 대표이사 회장

 ‘테스트 470회 거친 밥솥’ 부엌을 점령하다

  

한때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인기를 한 몸에 모으던 일제 조지루시(象印) ‘코끼리 밥솥’과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 제품들이 버티고 있던 전기밥솥 시장에 당시 작은 하청기업에 불과했던 쿠쿠홈시스㈜ (대표이사 具滋信 회장)가 어느 날 갑자기 자체 브랜드를 들고 그런 난공불락의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불과 1년 3개월 만에 업계를 평정했다. 우리 땅에서 일제 코끼리 밥솥을 몰아낸 것은 물론이다. 작은 하청업체에 불과했던 쿠쿠홈시스가 단기간에 업계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비결은 ‘품질’이었다. 자체 브랜드인 ‘쿠쿠’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800 여만 대의 제품을 판매했지만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발생하지 않았을 정도다. 구자신 회장은 대부분 사안의 경우 팀장들에게 재량권을 듬뿍듬뿍 주고 있지만 품질문제만큼은 자신이 직접 챙긴다. 품질보증팀만 회장 직할로 두고 특별 운영한다. 쿠쿠 전기밥솥 하나를 소비자들에게 내놓기 위해 100여 가지의 안전성 테스트와 370가지 품질검사를 실시한다. 품질문제에 유난히 집착하고 있는 이유는 지난 1981년 대기업 하청 일을 하던 시절 대기업에 납품한 전기밥솥에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무슨 이유로 화재가 발생했는지 밝혀내지 못했지만 약자인 하청업체가 책임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다. 주문이 끊기고 공장가동까지 중단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중에 유통 중인 6000여 대의 제품을 회수한 뒤 공장 앞마당에 3년 동안 쌓아 놓았다. 구회장 자신을 포함한 모든 직원들이 오갈 때마다 바라보면서 아픔을 잊지 말자는 취지였다. 값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품질의 중요성을 뼛속까지 각인시키는 학습의 계기가 되었다. 누구의 탓이건 품질불량이 기업 존망의 위기상황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무서운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화재원인도 모르고 그 책임을 다 뒤집어썼기 때문에 억울하기도 했다. 그래서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기로 마음먹고 대기업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에서 벗어나 우리 이름으로 시장에서 직접 승부하기 위해 극비리에 자체 브랜드용 신제품 개발팀을 꾸렸다. 당시 개발팀이 주목한 것이 바로 가스 압력밥솥이었다. 2년 만에 증기 압력을 이용해 밥맛을 차지고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그런데 경쟁사에서 먼저 전기 압력밥솥을 전격 출시를 하였다. " 그땐 참 속이 쓰렸습니다.” 그러나 구 회장은 이런 모든 시련이 쿠쿠를 키운 ‘자양분’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호된 시어머니 노릇을 하던 원청기업들이나 까다로운 입맛의 소비자들이 모두 업계 1위 고지로 인도하는 ‘가이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쿠쿠홈시스가 불과 1년 3개월 만에 업계 1위 업체로 도약할 수 있었던 토대는 1997년 말부터 우리 경제를 강타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한파였다. IMF 때 원청기업의 밥솥판매가 곤두박질치면서 하청 주문량도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여 공장가동이 중단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IMF 한파 아래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퇴직금도 주지 못할 어려움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고 그나마 여유가 있을 때 직원들을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직원들이 우르르 구 회장 방을 찾아가서 ‘살아도 함께 살고 망해도 함께 망하자’며 눈물로 호소를 하였던 것이다. 거기서 구 회장은 생각을 바꿨다. 그날 직원들과 꼬박 밤을 새우며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고 결의도 다졌다. IMF 관리체제 당시 많은 기업들이 투자규모를 줄이던 1998년 4월 구 회장은 처음으로 독자 브랜드 ‘쿠쿠’를 시장에 내놓고 사운을 건 판촉활동을 벌였다. 하청기업에 유통망도 없었지만 거래처 확보를 위해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IMF 관리체제 하의 얼어붙은 시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으며 3개월 만에 겨우 첫 번째 거래를 성사시켰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고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승부를 걸 시점에서 확실하게 몰아붙여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한 해 동안 50여 억원의 광고비를 쏟아 부었다. 다행히 그때 여유자금을 지니고 있었지만 은행금리가 20% 가까이 치솟던 IMF 상황에서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다. 광고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쿠쿠의 인지도가 치솟으면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1999년 7월 국내 전기밥솥 시장 1위에 우뚝 올라서게 되었다. 요즘은 진공청소기와 가습기, 비데, 선풍기, 전기히터 등 쿠쿠의 다른 전자제품들도 소비자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연간 3000여 억원 어치의 물건을 팔면서 한 푼의 외상거래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구 회장은 그러나 채권·채무관계를 거의 일으키지 않으면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구 회장은 외상거래가 관행처럼 돼 있는 중국시장을 개척하면서도 ‘외상 사절’ 원칙을 내걸었을 정도다. 왜냐하면 쓸데없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외상거래를 안 하면 돈 받으러 뛰어다닐 필요도 없고, 돈 떼일 염려도 없다. 한번 외상거래를 트기 시작하면 이를 관리하는 수금사원 둬야지, 별도의 경리사원 둬야지, 이런 저런 부대비용 지출이 불어나게 마련이다. "외상으로 물건을 줄 때는 서서 주지만, 돈을 받을 때는 엎드려 받아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런 짓을 왜 합니까. 쿠쿠 브랜드를 내놓은 이후 10원 한 닢 떼인 적이 없어요.” 구 회장은 자체 브랜드를 내놓은 지 채 10년도 안됐지만 벌써 튼실한 ‘쿠쿠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자랑했다. 안전사고 없고, 군살조직 없고, 빚 없는 기업…. 이렇게 내실을 다진 구 회장은 이제 중국과 동남아, 유럽시장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연간 4000만대의 시장이다. 구 회장이 만들어내는 ‘밥솥 한류(韓流)’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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