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구자경 (9kkku@naver.com) (67 남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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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성구씨의 기원은 고구려인의 후예이며 왕손후예일 가능성이 있다.  

능성구씨의 기원은 고구려인의 후예이며 왕손후예일 가능성이 있다.

위키백과에서 기록된 내용을 보면

“능성 구씨의 시조 구존유가 1224년 주잠과 함께 중국에서 도래하였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으나, 중국에 있는 신안 주씨의 기록에 구존유는 고려인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1224년 이전부터 호남 지방에 토착 구(具)씨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가 멸망한 뒤 나주(羅州)에서 포로로 잡힌 백제 장군 구도(具道)의 아들 구단서(具端舒)가 있고,[2] 궁예의 태봉국 시중(侍中)이었던 구진(具鎭)이 918년(태조 1) 나주도(羅州道) 대행대(大行臺) 시중(侍中)에 임명되었으며,[3] 1101년(고려 숙종 6년)에 탁라(乇羅) 성주(星主)인 배융부위(陪戎副尉) 구대(具代)가 유격장군(遊擊將軍)에 임명되었던 사실을 《고려사(高麗史)》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씨(具氏)가 예로부터 나주(羅州)나 능성(綾城) 지역의 토착 성씨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에도 구씨(具氏)를 능성현(綾城縣)의 대표적인 토착 성씨로 기록하고 있다.

 

대종회에서는 역사서를 근거로 중국 도래설을 반박하고 능성 구씨가 토착 성씨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첫째, 고려 이전에도 호남 지방에 토착 구씨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둘째, 본문에 언급한 바와 같이 여러 역사서에 능성 구씨가 토착 성씨로 기록된 점이다. 셋째, 중국 측 주씨의 기록에는 구존유가 고려인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에 편찬된 신안 주씨의 족보를 토대로 능성 구씨가 중국계 성씨임을 주장하는 일각의 주장은 역사 사실과 맞지 않다. 넷째, 현재 중국에는 구(具)씨 성을 가진 씨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성 구씨가 중국계 성씨라는 주장은 모화사상에 기초하여 중국과의 관련성을 부각하고자 했던 시도로 보는 것이 설득력 있다.”

 

위의 위키백과 기록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

 

1. 중국 측 기록에 의하면 구존유 시조부님은 고려인이다.

여기에서 고려라함은 고구려의 원래 명칭을 의미하는 것이지 왕건의 고려를 의미한다 할 수 없다. 원래 고구려는 장수왕부터 고구려라 하지 않고 고려라 했으며 중국의 여러 문헌에도 고구려를 고려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왕건의 고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삼국사기 등에서 왕건의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고주몽의 고려는 고구려, 왕건의 고려는 고려라 구분했다는 설이 있으며 중국에서는 고구려를 고려, 구리 등으로 기록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중국기록의 고려를 왕건의 고려로 단언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결론이라 볼 것이다.

고구려가 멸망을 하였는데도 시조부님 선대께서 중국 땅에서 고려(=고구려인)인으로 살아왔다는 것에 매우 중요한 단서가 있다. 오랫동안 고구려인임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중국한족에 동화되지 않고 살아오신 것은 다름 아닌 고구려의 왕족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왕족이 아니라면 쉽게 한족이나 이민족에 동화되었을 것이다. 왕족으로서의 긍지와 고구려인의 맥을 이어가려한 어떤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 있었을 것이고 송나라와 원나라교체시기에 더욱 위기감, 자칫 고구려의 왕손으로서 발각될 시 고구려의 맥이 끊길 수 있는 위기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피신을 하게 된 것으로 추측한다.

 

2. 시조부님께서 주청계와 함께 고려의 땅으로 피신해왔다는 기록을 모화사상에 근거를 두고 부정하는 것은 매우 역사적 사실을 왜곡시킬 위험성이 있다.

시조부님(또는 시조부님의 선대조상)은 중국에서 고구려인의 왕손임을 지키기 위해 한족에 동화되지 않고 살아왔을 가능성이 있으며 주청계와 함께 원나라의 핍박을 피해 전라도 나주 또는 능성으로 오셨을 가능성이 있다. 이때 시조부님의 조상 선대님들이 주청계와 오시어 시조부님을 나신 것인지 시조부님이 중국 땅에서 태어나서 함께 오신 것인지는 추후 연구를 해야 할 부분이다.

주청계가 능성으로 피신하여 이름을 구적덕으로 개칭을 하였다고 하는 바 시조부님(또는 시조부님의 선대 조상)또한 핍박을 피하기 위해 능성과 나주의 토착성씨이신 구씨로 개종을 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떻게 시조부님 가계가 중국 주씨와 연관을 맺게 된 것인지는 꼭 조사 연구해야할 부분이다.  

3. 능성구씨가 백제시대부터 능성과 나주에 분포되어 있던 토착 구씨에서 발원되었다고 단정을 내리다 보니 중국 문헌의 고려인이라는 것을 왕건의 고려로 해석하고, 또한 주청계와 함께 피신했다는 기록을 모화사상으로 치부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할 것이다. 물론, 기록상 전라도 지역은 백제로서 구씨성이 많이 분포되어 토착민으로 있었다. 그러나, 토착 구씨와 시조부님과의 연관성이 전혀 드러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단지 추측만으로 연관성을 찾으려는 것은 다른 개연성의 본질을 매우 흐리게 하거나 추정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조부님에 대한 기록 즉 고려인(=고구려인)이었으며 주청계와 함께 왕건의 고려로 피신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를 바탕으로 해서 추론해 나가야 한다.

위키 백과 기록은 1) 고구려인일 가능성을 배제 2) 함께 피신했다는 사실의 부정 3) 토착 구씨일거라는 추측에의 확신에 초점을 맞추어 다른 가능성을 전혀 보지 않고 결론을 내린 게 아닌가 생각된다. 만약, 고구려의 왕손후예라면 패망한 큰 나라 왕의 후손으로서 세상에 드러내고 살아가기는 시대상 매우 어려웠을 것이기에 기록으로 남길 수 없는 문제가 분명 있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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