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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대종회
2017/6/26(월)
능성 구씨 문화기행 ⑦  

 

 

구중서(具仲書, 문학평론가)

      

   능성 구씨 문화기행 ⑦

 

          한국 현대미술의 선구자

             ― 화가 구본웅 -

 

  구본웅 그림(시인 이상 초상화)

  국립현대미술관소장

능성 구씨 문중에 한 화가가 있는데 뛰어난 천재 화가 구본웅(具本雄)이다. 금성출판사발행『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선집』 구본웅편에 미술평론가 이구열이 해설을 쓰면서 제목을 「새로운 회화」의 선구자라고 붙였다. “구본웅은 1930년대에 파리에서 도쿄로 파급되고 있던 야수파·입체파·표현파 정신의 참신성에서 자극을 받으면서 자신의 예술을 과감하게 개척하려는 지적 감성을 작품에 표출시켰다”는 점에서 그는 당대 화단의 대표적 전위 예술가였다고 했다. 구본웅이 일제하 조선 화단에서 이만큼 능력을 발휘하고 선구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일본에 유학하며 충분한 수업을 쌓은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화가 구본웅은 능성구씨 도원수공파 충렬공(청백리 영의정 구치관)의 후손이다. 그는 1906년 서울 필운동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친 자혁(滋爀)은 구한말 애국계몽기의 지성인으로 일찍이 『황성신문』의 기자를 거쳐 종합 지성지 『개벽』의 편집장이었다. 모친 상산 김씨(尙山 金氏)는 본웅을 낳고 산후건강에 이상이 생겨 본웅을 데리고 황해도 연백 친정으로 갔다. 그러나 친정에서 요양하던 4개월 만에 모친은 별세하고, 본웅은 심부름 하던 소녀 복실의 등에 업혀 마을에서 젖동냥을 다니다가 두 살 무렵에 복실의 등에서 봉당에 떨어져 척추를 다쳤다. 부친이 본웅을 서울의 병원에 데려갔으나 고칠 수 없는 장애의 상태였다. 가정 경제는 부유했으나 뜻밖의 사고로 장애의 몸이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불운이었다. 그러나 신체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소년 본웅은 학교 수업에 매진했다.

1921년에 신명보통학교를 졸업했는데 뒷날 시인이 된 이상(본명 김해경)이 동기생이었다. 이 때로부터 구본웅과 이상은 평생 가장 가까운 친우로서 함께 예술 작업에 정진하며 지낸다. 경신고등보통학교에 다닐 때 구본웅은 토요일마다 YMCA(기독교청년회) 안에 설치된 고려미술회에 나가 미술공부를 했다. YMCA는 숙부인 구자옥(具滋玉)이 오랜 동안 총무로 근무하는 곳이었다. 숙부 자옥은 조카 본웅을 총애했으며 사생상(寫生箱, 스케치 박스)을 사 주기도 했다. (이 숙부는 미국의 스프링필드대학을 졸업했고 8·15 해방 후에는 수도 서울이 포함된 경기도 도지사를 지내고, 능성구씨대종회의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6·25 전쟁 중에 납북을 당했다.) YMCA 고려미술회에서 구본웅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으로부터 서양화를 배우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화가였던 나혜석 으로부터 미술실기를 지도 받았다. 또 이 곳에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조각가였던 김복진으로부터 조각을 배웠다. 이 때의 조각 작업은 구본웅에게 건강상 무리가 되었다. 1927년 5월 구본웅이 작업실에서 탈진한 상태로 있을 때 친구인 화가가 임의로 구본웅의 조각 「얼굴 습작」을 선전(鮮展, 조선미술전시회) 마감 접수대에 제출했다. 구본웅은 관청이 주도하는 선전에 출품하지 않으려 했는데 본의 아니게 조각부에서 특선으로 당선했다.

구본웅은 타성적인 자연주의 미술경향에 불만을 품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1928년에 처음으로 일본에 가서 도쿄의 가와바다미술학교에 입학했다. 다음 해엔 니혼대학 전문학부 미학과로 옮겨 본격적으로 미술이론을 수학한다. 이 때의 지적 탐구가 뒷날 그가 귀국해 전위적 화법을 구사하고 미술평과 수필까지 쓰는 역량을 갖추게 한다. 그런데 이 해 방학을 맞는 때에 구본웅은 부친의 지시에 따라 일시 귀국해 결혼을 하게 된다. 부친의 설명은 신부가 옛 선비 강희맹 후손 가문의 딸이라고 했다. 이 혼인으로 구본웅은 세 아들을 낳게 된다.

1931년에 구본웅은 동아일보사 옥상전시실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어 인간정신의 내면적 역동성을 과시하는 전위적 작업을 전개한다. 국내 각 신문에 화단에 관한 평론도 발표한다. 미술에 대한 탐구열은 더 지속되어 1933년에 구본웅은 다시 일본으로 가서 태평미술학교 본과를 졸업한다. 그러나 그가 야수파·입체파·표현파를 관통했다는 전위적 예술정신은 외래적인 극단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었다.

톱질에 관한 그의 수필 「허둔기」(虛屯記)가 있다. “서양 것은 내밀어야만 베어지고 일본 것은 잡아당겨야만 썰어지는데, 우리의 것은 슬근슬근 톱질에 나가며 들어오며 두 사람이 하게 되어 협동작업의 정신을 나타낸다. 이것도 문화의 자랑일 것이다.” 이렇게 구본웅은 민족의 문화에 대한 애정과 긍지를 지녔다.

1934년에 부친 구자혁이 경영하던 출판사 창문사(彰文社)는 당시에 최신 인쇄시설을 갖춘 회사였다. 같은 시기에 문단을 대표하던 시인과 소설가들의 모임으로 ‘구인회’(九人會)가 있었다. 회원인 정지용·이태준·이효석·박태원·이상·김유정 등의 작품을 게재하는『시와 소설』『청색지』 등 잡지의 발행인이 구본웅이었고 제작을 창문사가 담당했다. 이 역할은 한국 현대 문단사의 주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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